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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소개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中部面) 산성리(山成里) 
남한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다. 


북한산성(北漢山成)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文武王)때 쌓은 주장성(晝長成)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2)에 축성(築成)하였다. 

《남한지(南漢志》에 따르면, 원래 심기원(沈器遠)이 축성을 맡았으나 
그의 부친상으로 인하여 이 서(李曙)가 총융사(摠戎使)가 되어 
공사를 시작하여, 1626년 7월에 끝마쳤다.
남한산성의 수비는 
처음에는 총융청에서 맡았다가 
성이 완성되자 수어청이 따로 설치되었고, 
여기에는 전(前) · 좌 · 중 · 우 · 후의 5영(營)이 소속되었는데, 
전영장(前營將)은 남장대(南將臺)에, 
중영장은 북장대에, 
후영장과 좌영장은 동장대에, 
우영장은 서장대에 진(陣)을 쳤다. 

현재는 서장대(守劉將臺 라고도 함) 하나만이 남아 있다. 

장대는 높은 섬돌 위에 2층으로 지었는데, 
아래층은 정면5칸, 측면3칸이고, 
위층은 정면3칸, 측면 2칸이다. 
지붕은 팔작(八作)이며 겹처마에 
위층은 판문(板門)으로 막았으나 아래층은 틔어 있다. 

성문은 홍예문{虹霓門) 위에 성가퀴를 두르고 
단층(單層) 문루(門樓)를 올려 세웠는데, 
매우 당당하고 위엄이 있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溫祚王)의 성터였다고도 한다.



남한산성 개요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24km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은 
동경 127도 11분, 북위 37도 28분 지점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으로는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 있으며 
성 내부는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속해 있다. 

남한산성이 위치한 광주시는 약 80%가 산이며 
나머지 20%가 평야부에 속하는 경작지이다. 
높고 낮은 산이 많으며 
좁고 긴 하천이 한강을 향하여 북 또는 북동쪽으로 흐른다. 

남한산성은 도립공원으로 1971년에 지정되어 관리가 되고 있으며, 
역사유적은 문화재 12개(국가지정 2개, 도지정 10개)를 포함하여 
200여개가 분포하고 있다.


ㆍ위치 :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일원(광주·하남·성남) 


ㆍ면적 : 
36,447㎢ [성내 2.317㎢(6%), 성외 34.130㎢(94%)] 
광주 22.920(63%) / 
하남 8.818(24%) / 
성남 4.709(13%) 


ㆍ공원지정 : 
1971. 3. 17 (경기도 공고 제158호)


ㆍ문화재현황 (12)

   - 국가지정(2) : 
성곽(사적 57호, 11.76km), 
남한산성 행궁 (사적 480호, 19,256㎢)

   - 도지정 
      유형문화재(6) : 
수어장대, 연무관, 숭렬전, 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문화재자료(2) : 
지수당, 장경사 

      도기념물(2) : 
망월사지, 개원사지 




남한산성 행궁



왕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곳을 말한다. 

남한산성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다.

실제로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다.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이 
여주, 이천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남한산성행궁은 
종묘(좌전)와 사직(우실)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이다. 

이것은 유사시 남한산성행궁이 
임시 수도로서의역할을 할 수 있음을 뜻한다.

특징으로 
조선시대 행궁제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또한 역사적으로 한번도 함락되지 않은 
대외 항전의 전적지로서 최고의 수준에 달하는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술을 보여주는 
남한산성(사적 제57호)과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행궁은 
1999년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상궐, 좌전이 복원되었으며, 
일부 건물지에서 
초대형 기와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된 중요한 유적이다.




수어장대


장대(將臺)란? 
시야가 확보되는 곳에 설치한 장수의 지휘소이지요. 

조선 인조(재위 1623∼1649)는 
후금에 등을 돌리는 외교정책을 펴면서 
전운이 짙어지자 남한산성을 새로 쌓다시피하면서
동서남북에 하나씩 4개의 장대를 세웠습니다. 

서장대가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데, 
곧 수어장대(守禦將臺)입니다. 

남한산성과 일대를 지키는 
수어청의 우두머리인 수어사가 지휘하는 곳이어서 
이렇게 불렀을 것입니다. 

해발 453m의 일장산 꼭대기에 세워진 
수어장대에 오르면 장쾌한 전망에, 
왜 이곳을 총 지휘본부로 삼았는지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수어장대는 다른 장대와 마찬가지로 단층이었지만, 
영조 27년(1751년) 중층의 누각형태로 지어집니다. 

영조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항복한 치욕을 씻겠다며 
북벌(北伐)을 추진한 효종이 묻힌 
여주 영릉(寧陵)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수어장대에 올랐습니다. 

수어장대 2층 누각의 내부에 
병자호란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을 내걸었던 것도 
영조가 이곳에서 느꼈던 
감회의 일단을 보여주는 대목이겠지요.

조선은 호란에 따른 이른바 정축화약(丁丑和約)에 
성을 개축하거나 신축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지만, 
인조 16년(1638년) 곧바로 남한산성을 다시 쌓았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인조 17년(1638년) 청의 사신 세 사람이 
남한산성을 살펴보고는 
크게 화를 냈다는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사신들은 

“산성을 고치고 네 곳이나 곡식을 쌓아두었으며, 
포루(砲樓)도 개설하였으니 
어떤 간계를 가지고 있기에 감히 이런 짓을 하는가. 
산성을 허물어버린 다음 
우리가 국경을 넘어가기 전까지 보고하라.”

며 얼굴을 붉혔습니다. 


이후 조선은 
청나라 사신이 삼전도비를 보고싶다고 할 때 마다 
멀지 않은 남한산성까지 찾아갈까봐 
갖가지 이유를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따돌리게 되지요.

호란 직후 
남한산성을 수리한 사실은 
‘남장대 옹성 무인비’가 자세히 알려주고 있는데, 
비석을 발견한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1996년 국립민속박물관장이던 
조유전 토지박물관장과 
전보삼 신구대 교수, 
조병로 경기대 교수, 
세상을 떠난 장철수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등은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남사모)’을 만들었습니다. 

남사모는 4월28일 첫번째 답사에서 
남한외성의 하나인 봉암성을 신축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봉암신성 병인 마애비’를 찾아냈습니다. 

두번째 답사인 5월26일에는 
남장대터 옹성(甕城)에서 새로운 비문을 발견했는데, 
바로 인조 16년 1월26일부터 
성을 새로 쌓기 시작하여 7월에 완성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회장군과 매바위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 때 삭토기법으로 많은 부분을 만들었으며 
협곡이 있는 곳은 판축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주장성의 성지는 
광해군때 남한산성을 국가보장지로 정하고 
인조2년(1624)에 총융사 이서에 명하여 
토성을 석성으로 쌓았다.

일반 민중과 승려들의 참여로 
2년 후인 1626년 11월에 완성되었다. 

이 성역을 쌓을 때 진실을 바탕으로 생긴 것이 
이회장군과 송씨의 설화이다. 

산성축성의 총 책임자는 이서이고, 
서북성은 각성 벽암대사가 이끄는 승병들이, 
동남쪽은 이회가 나누어 쌓았다.

벽암각성대사는 공사를 완공하였는데 
이회는 사재를 팔아서 경비를 충당하며 
축성하여도 지세가 험하여 성 쌓기가 늦어졌고, 
경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공사경비를 주색에 탕진하였다는 누명을 썼다. 

이회는 구차한 변명 없이
“내 죄가 없다면 매 한 마리가 날아올 것이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참수 당하였다.

그런데 실제로 이회 장군의 목을 베자, 
이회 장군의 목에서 매 한 마리가 튀어나와 
근처 바위에서 슬피 울다가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멀리 날아가 버렸다. 

사람들이 그 매가 앉았던 바위를 보니 
매 발톱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축성공사 한 성패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회장군이 쌓은 성은 
견고하고 과학적인 축성기법으로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어 
무고였음이 드러나고 
이회부인 송씨는 
축성자금을 3남 지방으로 가서 마련하고 돌아와 
송파나루에서 그의 죽음을 알게 되어 
통곡하며 모금한 쌀을 강물에 뿌리고 
죽음을 선택하니 
이후로 이곳을 쌀섬여울이라고 불렀다.

이후 사람들은 
이회 장군의 목에서 나왔던 
매가 앉았던 바위를 매바위라 부르고, 
이 바위를 신성시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 매바위에는 
실제로 매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어떤 일본인 관리가 남한산성을 둘러보다가, 
바위 위의 매 발자국을 보고 
참 신기한 일이라 여겨서 
그 매 발자국이 찍힌 부분을 도려내어 떼어 갔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그 일본 관리가 떼어갔음을 말해주는 
사각형의 자취만 남아 있다고 한다.



남한산성 둘레길

역사와 자연, 문화가 있는 남한산성 길을 걷다

전체면적 36.4㎢, 
성 면적 2.3㎢에 달하는 남한산성 성곽의 길이는 
총 11.7㎞에 이른다. 

이 가운데 본성은 9.05㎞이고, 
나머지 2.71㎞는 옹성(甕城)이다. 

성곽은 주봉인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의 연주봉, 
동쪽의 망월봉과 벌봉, 
남쪽의 이름 없는 봉우리 몇 개를 연결해서 쌓았다. 

남한산성의 외부는 급경사지만 
성곽 안쪽에는 평균 해발고도 350m 내외의 
완만한 구릉이 있는 분지가 형성돼 있다. 

성안에는 
우물 80개와 샘터 45개소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물도 풍부하다.

경기관광공사는 
역사와 자연, 문화가 숨 쉬는 천혜의 걷기 코스인 
남한산성 탐방로를 5개 코스로 나눠 
‘이야기가 있는 남한산성길
’이라 명명했다. 

봄볕 따스한 주말에 이 길을 걸으면 
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탐방 코스는 

▲역사와 함께 소요하는 생명의 길
(산성종로∼매바위 왕복 2.5㎞, 2시간 소요) 

▲행궁과 함께하는 법도의 길
(산성종로∼숭열전 왕복 1.7㎞, 2시간 소요) 

▲기억과 함께하는 반추의 길
(산성종로∼봉암성 왕복 4.1㎞, 3시간 소요)

 ▲성곽과 함께하는 의지의 길
(산성종로∼북문 왕복 4.3㎞, 3시간 소요)

 ▲산성을 따라가는 웅성 미학의 길
(산성종로∼지수당 왕복 3.5㎞, 4시간 소요)

로 구분된다. 


코스안내



1코스. 거리 : 3.8km 소요시간 : 80분
산성종로(로타리) -숲속으로(0.2km)- 북문(0.4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산성종로(로타리 0.7km)

2코스. 거리 : 2.9km 소요시간 : 60분
산성종로(로타리) - 영월정(0.4km) - 숭열전(0.2km) - 수어장대(0.6km) - 서문(0.7km) - 국청사(0.1km) -숲속으로(0.7km)
- 산성종로(로타리(0.2km)

3코스. 거리 : 5.7km 소요시간 : 120분
관리사무소 - 현절사(0.1km) - 벌봉(1.8km) - 장경사(1.5km) - 망월사(1.1km) - 지수당(1.0km) - 관리사무소(0.2km)

4코스. 거리 : 3.8km 소요시간 : 80분
산성종로(로타리) - 남문(0.7km) - 남장대터(0.6km) - 동문(1.1km) - 지수당(0.5km)- 개원사(0.3km) - 산성종로(로타리(0.6km)

5코스. 거리 : 7.7km 소요시간 : 200분
관리사무소 - 동문(0.6km) - 동장대터(1.1km) - 북문(1.6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동문(1.7km) 



남한산성등산안내지도





예로부터 전해내려온 남한산성의 설화



남한산성 남문 근처에는 
1986년 말에 복원된 개원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은 옛날부터 
불경을 많이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한번에 아주 많은 양의 밥을 지을 수 있는
 무게가 200근이 넘는 큰 놋동 4개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 절에서는 
귀중한 불경 궤짝을보관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매우 신기하다.


조선 인조 때의 일이다.
한 척의 배가 서울 삼개 나루에 닿았다. 
그런데 그 배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다만 불경을 담는 궤짝만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궤짝 위에는
 '중원개원사간'
이라는 글자가 새겨 있었다. 

이를 발견한 삼개 사람들은 
이상한 일이라고 여기고, 
그 궤짝을 관가로 보냈다. 
그리고 관가에서는 이를 다시 왕에게 올렸다.

삼개에서 보내온 궤짝과 그 사연을 들은 인조는

"사람도 하나 없는 배가 
삼개에 이른 것만 해도 
정말 기이하고 신령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불경 궤짝이 
중원의 개원사에서 판각하고 찍은 것이라니, 
이는 반드시 인연이 있어 
우리 나라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혹시 우리 나라에 개원사라 불리는 절이 있는 지를 
알아보도록 하라.

내가 보기에는 
불경 궤짝 위에 쓰여진 글로 보아, 
그 불경 궤짝을 우리 나라의 개원사에 보내 
길이 보관하라는 뜻인 것 같다. 

서둘러 개원사라는 절을 찾아보시오."

라고 분부하였다. 

이에 개원사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절을 찾아보니, 
광주 남한산성 안에 있었다. 

그래서 인조는 그 불경 궤짝을 귀중하게 잘 싸서 
남한산성의 개원사로 보냈다. 

불경 궤짝은 한동안 별 탈없이 잘 보관되었다. 

그런데 불경 궤짝을 보관하고 있던 
개원사에 불이 나게 되었다. 

절의 화약고에서 불이 일어나 
절 전체가 타버릴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불길의 반대편에 거센 바람이 불어와 
일순간에 불이 꺼져버렸다고 한다.

후에 다시 한 번 큰불이 나서 
불길이 그 궤짝을 보관하고 있던 누각에까지 
번진 적도 있었다. 

이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비가 내리더니 
무섭게 타오르던 불길을 덮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불경 궤짝을 보관하던 누각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두 차례나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 사람들은 
불경 궤짝을 보관하고 있는 개원사를 
부처님의 덕을 보고 있는 절이라고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길, 나를 만나러 가는 여정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겨우내 가루눈이 내렸고, 
눈이 걷힌 날 하늘은 찢어질 듯 팽팽했다.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 있었고 토막 없이 길게 이어졌다. 
칼바람이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눈 덮인 봉우리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주린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었다. 
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졌고, 물고기들은 강바닥의 뻘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람 피와 말 피가 눈에 스며 얼었고, 그 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김훈 <남한산성> 中


1963년 12월 14일, 
조선의 16대 임금 인조는 남한산성에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이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7일간 머물렀다. 
‘살아서 죽을 것이냐, 죽어서 살 것이냐’는 
임금의 고뇌와 갈등이 발 닿는 곳마다 스며있다.

 
남한산성 둘레길 코스는 5가지다. 
가벼운 산책을 하는 1시간 코스부터 
3~4시간이 걸리는 5코스까지 
자신에게 맞는 코스로 선택하면 된다. 

성곽 내부 길은 잘 다져진 넓은 길인 덕에 
볕 좋은 날이면 유모차를 끌고 오는 사람들도 많다.

남한산성에 가면 
소나무 군락과 다양한 종의 나무들도 둘러봐야 한다. 

수어장대 일대에는 
주민들이 정성으로 돌보고 지켜온 
1970~90년생 소나무 숲이 72ha나 펼쳐져 있다. 

서울·경기지역에서 
노송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 소나무 숲은 
일제강점기 때 마을 주민 303명이 
국유림을 불하받은 후 
벌채를 금지하는 금림조합을 만들어 보호해왔기 때문에 
지금껏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밖에도 
신갈나무, 
서어나무,
 물푸레나무, 
귀룽나무, 
물오리나무, 
은사시나무 등도 
볼 수 있다. 

벚나무와 은행나무는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 있고, 
단풍나무도 
군데군데 동산처럼 심어져 있다. 

도시에선 볼 수 없는 나무들 사이로 걷다보면 
들숨과 날숨이 산뜻하다. 

이곳은 특히 겨울에 좋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남한산성 둘레길은 
강원도 백두대간의 선자령길, 
무등산의 눈꽃 길 등과 함께 
아름다운 눈꽃 길로 선정됐다. 

지난 며칠간의 폭설로 흰 옷을 입은 지금이야말로 
걷기에는 제격인 셈이다. 

올 겨울에는 남한산성 둘레길 걷기를 추천한다. 

차고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눈꽃길을 걷는데 
그깟 
추위쯤이야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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